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박사는
나치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소년들을 보살피는 일로
부름을 받았다. 아직 수용소 막사에 누워 있던 아이들을 보러
들어갔다가, 박사는 나무 침대에 새겨진 어떤 그림을 보게 되었다.
나중에 다른 수용소들을 돌아다니면서도 박사는 똑같은 그림을 다시 보았다.
아이들의 그림에는 단 하나의 모티프가 있었다.
그건 바로 나비였다.
박사는 처음에 그것이 매맞고 굶주리던 아이들끼리 일종의 형제애를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옛날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물고기를
공동체적 결속의 상징으로 삼았듯이, 그 아이들도 나비를 통해
자기들이 한 집단에 속해 있음을 표현했을 거라고 박사는 믿었다.
박사는 여러 아이들에게 그 나비들이 무엇을 뜻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아이들은 대답을 거부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아이가 그 의미를
밝혀주었다. < 그 나비들은 우리와 같아요. 우리는 모두 이 고통받는
육신은 하나의 매개체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지금의 우리는 애벌레와 같아요. 나비를 그리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일깨우곤 했어요.
우리는 나비다. 우리는 곧 날아 오를 것이다라고 말이예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사전' 중에서
결국 유대인 소년들에게 그 당시의 나비는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또 하나의 나비가 떠 오른다.
영화 '빠삐용'에서 스티브맥퀸이 가슴에 새긴 나비문신-
살인 누명을 쓰고 프랑스령 기니아에서 가혹한 수감생활을 하며
끝없는 탈출을 시도한 끝에 '악마의 섬'으로부터 탈출에 성공,
영원한 자유를 누렸던 스티브맥퀸의 가슴에 앉아 있던
그 뜨꺼운 열정의 나비를 생각해본다